2020-01-07 / Admin / 149
실험실과 의료현장 잇는다 … 논문 넘어 진단과 치료까지

강주헌 생명과학부 교수가 2016년 2월에 부임해 만든 TMB Lab에는 현재 12명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혈액이나 땀처럼 몸속에 돌아다니는 ‘생체유체’를 활용한 질병 진단과 치료기법을 발굴하고, ‘패혈증’ 치료를 위한 혈액 정화 장비를 개발하며, 신약 검증을 위한 ‘생체모사 칩’을 연구하는 등 다양한 주제에 매진하고 있는 TMB랩을 찾았다.


<알쏭달쏭 랩 이름>

TMB랩(Translational Multiscale Biofluidics Lab)

· Translational: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 즉 실험실에서 얻은 연구의 성과를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기 위해 노력
· Multiscale: 나노미터에서 밀리미터까지 생체유체를 다루는 다양한 스케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이용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
· Biofluidics: 혈액, 혈장, 소변처럼 몸에서 나오는 생체유체를 대상으로 실험


TMB랩에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편하고 자유롭게 연구하라는 취지다. 근무시간이 자유롭다 보니 연구원들 스스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터득한다. 정수현 연구원(생명공학과 박사과정 19)은 “교수님께서 실험이나 연구 외적으로는 전혀 간섭하지 않아서 자유로운 편”이라고 귀띔한다.

일하는 시간을 일임한다는 건 강주헌 교수가 연구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뢰 표시다. 그래서일까. 실험실 분위기도 각별하다. 인간적인 교류 없이 그저 연구만 할 거라는 오해는 금물. 학부 4학년이던 2016년 2학기에 TMB랩과 인연을 맺은 오지웅 연구원(생명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17)은 진학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진학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좋은 사람들’을 꼽았다.

랩온어칩 기술을 이용해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칩을 제작하고 있다. 마이크로 단위의 작은 미세 유체 채널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는 이민석, 정수현 연구원. | 사진: 안홍범

랩온어칩 기술을 이용해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칩을 제작하고 있다. 마이크로 단위의 작은 미세 유체 채널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는 이민석, 정수현 연구원. | 사진: 안홍범

“복학 후 첫 수업으로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나노바이오엔지니어링’을 들었는데, 그때 패혈증 환자를 상대로 만든 장비에 대해 소개해 주셨어요. 이제껏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여서 흥미로웠습니다. 실험실에 들어와 관심이 더 높아져 계속 남아서 공부하게 됐습니다. 실험실 사람들이 좋았던 것도 진학을 결심하게 된 큰 요인이 됐고요.”

TMB랩에서는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연차나 나이에 구분 없이 편하게 대화하는 수평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연령대가 비슷해서 친목을 다지는 시간도 자주 갖는 편이고, 그런 만큼 화합도 잘 된다. 그렇다고 늘 좋을수만은 없을 터.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과 집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이 연구실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간의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강주헌 교수는 수시로 연구원들에게 배려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일례로, 성과가 눈앞에 있으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혼자 일등하고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그런데 지나고 나면 그 논문 하나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길게 보면 더 중요한 게 있는 법이거든요. 학생들에게 그런 경험들을 자주 이야기해 주려고 애씁니다.”


‘피, 땀, 눈물’로 병 찾고 고치는 사람들

그렇다면 TMB랩에서는 어떤 연구를 할까. 주로 생체 속에 흐르는 피와 땀, 눈물 같은 생체유체를 이용해 질병 진단과 치료를 위한 기술을 개발한다.

연구 분야는 크게 감염 질환, 바이오 센서, 생체장기모사 칩으로 나뉜다. 감염 질환 연구는 진단과 치료로 나뉘는데, 진단과 관련해서는 감염 여부를 신속하게 확인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 중이다. 며칠씩 걸리는 기존의 진단 방법을 몇 시간 안에 단축시키는 게 목표다. 감염 질환 치료와 관련해서는 신장 투석처럼 혈액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전혈 투석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환자의 혈액이 깨끗해지면 감염으로 인한 전신 염증반응을 낮출 수 있어 기존 치료 방법과 함께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포에서 추출된 DNA에 존재하는 타깃 유전자를 리얼타임(Real-time) PCR 기법으로 정량하는 실험 중이다. 김대호 연구원이 실험 계획에 맞게 PCR 할 수 있도록 실험 조건을 확인하고 있다. | 사진: 안홍범

세포에서 추출된 DNA에 존재하는 타깃 유전자를 리얼타임(Real-time) PCR 기법으로 정량하는 실험 중이다. 김대호 연구원이 실험 계획에 맞게 PCR 할 수 있도록 실험 조건을 확인하고 있다. | 사진: 안홍범

바이오 센서는 주로 혈액이나 체액 속에 있는 항원 농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한다. 당뇨 환자들이 매일 혈당을 체크하듯 손끝 채혈로 얻은 피 한 방울로 빠르게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일례로, 치료를 마친 암 환자가 가정에서 매일 손끝 채혈을 통해 질병 치료의 예후를 관찰할 수 있다면 보다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다. TMB랩은 현재 스타트업과 함께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생체장기모사 칩(Organ-on-a-chip)은 심장이나 폐, 간 등 사람의 몸속 장기를 모방해 만든 작은 칩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장기를 체외에서 모사해서 그 기능과 구조를 구현해 낸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약물을 투여하면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관찰하면 약물의 안전성은 물론 전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신약 개발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임상시험을 축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덕분에 제약회사의 관심이 높다.

TMB랩이 짧은 기간 동안 거둔 성과는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주헌 교수는 영국 왕립화학회(The Royal Society of Chemistry, RSC)에서 발간하는 저널 <랩온어칩(Lab on a Chip)>의 2018 이머징 인베스티게이터(Emerging Investigator)*에 선정돼 주목받았다. 연구원도 예외는 아니다. 올 초 정수현 연구원이 패혈증 치료를 위한 장비 개발 계획으로 ‘아산사회복지재단 의생명과학분야 대학원 장학생’으로 선정된 것. 이래저래 TMB랩의 성과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 관련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 10년 내에 교수 등 독립 연구 커리어(Independent Carrier)를 시작한 젊은 연구자 중에서 선정한다. 선정된 연구자는 <랩온어칩(Lab on a Chip)>의 특별호 <이머징 인베스티게이터 시리즈(Emerging Investigator Series)>에 논문을 출판한다.


원석이 보석이 되어 가는 과정

연구실 생활은 실험을 계획하고, 직접 실험을 진행하고, 실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구성원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눠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러한 생활에 지치지 않고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동기 부여다. 함께 연구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이 하는 연구가 정말 필요한 연구인지,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무명의 원석은 가치를 지닌 보석으로 거듭난다.

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배지를 제작하고 있는 정수현 연구원. | 사진: 안홍범

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배지를 제작하고 있는 정수현 연구원. | 사진: 안홍범

“원석으로 들어온 연구원이 연구실에서 훈련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찾길 바랍니다. 훈련을 얼마나 잘 따라오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테고,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다음 단계로 보다 쉽게 도약할 수 있을 거예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성실성’이다. 강주헌 교수는 “연구는 몸으로 하는 일”이라며 “매일 아침부터 늦게까지 일정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성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연구 성과 역시 꾸준히 성실하게 연구해야만 거둘 수 있는 결과물이다. TMB랩의 구성원은 자신들이 시간을 들이고 노력한 연구가 뜻깊은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병원이나 환자, 혹은 기업에게 의미 있는 연구가 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중개연구라는 같은 비전을 가지고 하나의 꿈을 향해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Mini Interview]

연구의 동력은 남다른 관심과 열정
강주헌 생명과학부 교수

강주헌 생명과학부 교수 | 사진: 안홍범

강주헌 교수 | 사진: 안홍범

Q. 교수님께서 바이오칩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바이오칩은 학제 간 연구를 통해 나온 분야로, 주로 바이오엔지니어링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학문과 학문 사이에서 만나 새롭게 탄생한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학부에서 화학공학과 생명과학을 함께 전공했어요. 졸업할 즈음 KAIST에 바이오 및 뇌공학과가 생겼고, 관련 연구실에 들어가 바이오칩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중개연구와 학제 간 연구를 모토로 설립된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비스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며 여러 연구 경험을 쌓았습니다. 미국에서의 직간접적인 경험 덕분에 사업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Q. 그간 TMB랩이 거둔 성과를 꼽아주세요.

A. 짧은 기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환경을 확보한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학생들과 연구원들을 만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연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거든요.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저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 학생과 연구원을 만나는 일이 정말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좋은 교수님들과 공동 연구자들을 만난 것도 큰 수확입니다. 협업이 무척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혼자서 뭔가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데요. 저는 운 좋게도 좋은 연구자들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Q. TMB랩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 한마디?

A. 자신의 관심사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나 유행, 부모님의 관심이 아닌 나만이 관심 분야를 찾아보세요. 나도 모르게 관련된 글을 읽고, 유튜브를 찾아보고 있다면 그게 바로 자신이 흥미를 갖는 분야인 겁니다. 그런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끝까지 연구에 몰입하고 이 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출처: UNIST Magazine 대외협력팀